썰
남편이 내 가사노동을 어떻게 당연시했는지 정리함
지금은 따로 살고 있어서 이제 좀 써도 될 것 같아서 씀
결혼 이십 년 동안 집안일을 혼자 다 해왔음
나도 보육원에서 종일 일하고 들어와서 저녁 차리고
아이 씻기고 재우고
다음날 도시락 싸놓고
빨래 돌려놓고 자는 생활이었음
보육원 일이 몸 쓰는 일이라 퇴근하면 이미 다리가 뻐근한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밥 차리는 게 이십 년 내내 반복됐음
근데 그 이십 년 동안 남편이 한 번이라도 고맙다고 한 적이 없음
그게 억울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도 화가 남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도 그게 내 역할이라고 받아들이게 됐던 거임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돌아온 말이
"집에 있잖아"
내가 보육원 일하고 들어왔다고 해도
"그래도 나보다는 낫잖아"
나보다 힘든 사람이 있으면 내 힘든 건 인정이 안 되는 논리
그 말 들을 때마다 그냥 입을 다물게 됐음
어느 날 내가 아파서 저녁을 못 차렸더니
"밥은?"
그 한마디가 진짜 많은 걸 보여줬음
걱정이 아니라 밥 어디 있냐는 말
그때 아
이 사람한테 나는 밥 차려주는 역할구나 싶었음
그날 처음으로 울면서 설거지를 했음
청소를 내가 했을 때는 뭐라 안 하다가
한 번 못 했더니
"집이 왜 이래"
이 사람한테 깨끗한 집이 유지되는 게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줄 아는 거임
내가 한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그게 당연히 돌아가야 하는 일이라 생각한 거임
아이 등하원도 이십 년 중에 손에 꼽을 만큼 했음
아파서 조퇴해야 하는 연락이 오면 항상 나한테 왔고
나도 일하는 중인데 내가 퇴근하고 데리러 갔음
그걸 당연히 엄마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임
내가 바쁘다고 해도 "그래도 너는 일찍 끝나잖아" 였음
가끔 남편 친구들이 와서 밥 먹고 가면
"잘 먹었다 역시 형수님이 최고야" 이러면서 가는데
남편은 그 말 듣고 뭐가 뿌듯한지 씩 웃음
그게 자기 자랑처럼 느껴지는 게 더 어이없었음
내가 해낸 일이 왜 남편 자랑이 되는 건지
명절에 친척들 오면 내가 전날 밤부터 준비하고
당일에도 부엌에서 내내 서있는데
남편은 거실에서 TV 보다 밥 먹고 낮잠 잠
명절 끝나고 나서 뒷정리도 당연히 나 혼자 했음
이 글 쓰는 게
남편 욕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런 게 이십 년 동안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
비슷한 상황인 분들한테는 그냥 읽히면 좋겠음
나는 지금 따로 살면서 처음으로 퇴근하고 내가 먹고 싶은 거 먹고
설거지 안 하고 자도 아무도 뭐라 안 함
이게 이렇게 편한 거인 줄 몰랐음
이십 년 동안 내가 잃어버린 게 뭔지
지금에야 조금씩 보임


스팸 때문에 댓글을 잠시 닫아두었어요.
운영자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