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올해 안에 혼인신고 안 하면 헤어진다고 했어
결혼 19년을 살았는데 혼인신고를 한 번도 안 했어요. 식도 없었고.
처음엔 둘 다 편했어. 파혼을 한 번씩 겪어봤거든 서류에 묶이는 게 싫었거든요. 양가 부모님께도 인사드렸고, 명절도 번갈아 다니고, 주변에선 그냥 부부로 알아줬어요. 저도 그렇게 살았고요.
올봄에 제가 갑상선 수술을 받으면서 문제가 터졌어요. 수술 동의서에 법적 보호자 서명이 필요한데 그 사람이 못 서명하는 거예요. 법적으로 아무 관계도 아니니까.
결국 시골 친정엄마가 새벽 버스를 타고 올라와야 했어요. 수술 직전에 엄마가 그 사람을 보던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병실에서 엄마가 조용히 물었어요. 이 사람이랑 앞으로 뭐 할 건이냐고.
저는 그냥 웃고 넘겼어요. 그게 제일 쉬웠거든.
퇴원하고 처음으로 혼인신고를 꺼냈어요. 그 사람의 첫 반응은 왜 갑자기 그러냐는 거였어요.
갑자기가 아니라 19년을 기다렸다고 했죠.
그 순간부터 말이 자꾸 변했어요. 지금까지 잘 살았는데 왜 굳이 하냐고 하더니, 어머니가 서운하실 거라고 하더니, 재산이 복잡해진다고 하더니, 우리 나이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더니.
재산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 처음으로 무서웠어요. 전세금의 절반은 제 돈이거든요. 계약서는 그 사람 이름이지만. 지금까지는 같이 사는 집이니까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 순간 남의 집처럼 느껴졌어요.
지난주 목요일 아침, 출근하는 그 사람한테 말했어요. 올해 안에 혼인신고를 하든가, 아니면 헤어지든가. 목소리가 떨릴 줄 알았는데 담담했어요.
그 사람은 신발을 신다가 멈춰서 한참 있더니 생각해 보겠다고 나갔어요.
그 이후로 일주일이 지났어요. 집에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밥 먹고, 티비 보고, 주말엔 함께 장을 봐요. 그 얘기는 둘 다 한 마디도 안 꺼내요.
어제 그 사람 폰에 엄마가 전화했는데 베란다로 나가서 받더라고요. 19년 동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그 통화가 제 얘기라는 건 안 들어도 아는 거죠.
제가 너무 늦게 말한 건지 차라리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모르겠어요. 마흔셋에 다시 시작하는 게 두렵기도 하고요.
그래도 다음에 또 아프면 엄마를 부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 하나로 버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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