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20대 내내 날 따라다닌 불(화재) 이야기
나는 20대를 보내며 정말 여러 차례 화재를 경험했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심심풀이로 공유해본다.
처음 불과 잘 못 엮이게 된 때는 한파가 몰아치던 07년 겨울인데 당시 스무살 이었던 나는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장면이 생생한 건 여전하다
부모님은 깡촌에서 90세 할아버지와 함께 사셨고 나는 1시간 거리의 인근 중소도시에서 오빠와 둘이 자취를 하며 대학 생활을 했는데, 부모님이 집을 비우게 되어 내가 할아버지 식사와 연탄 보일러를 갈러 시골 집에 몇 일간 머무르게 되었다.
07년이어도 우리집은 장작 불로 방을 데우는 아궁이도 있고, 연탄 보일러도 있는 아주 오래된 시골 집에 살았었다.
부모님이 미리 연탄 보일러 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시골에 살았어도 내가 직접 할 일은 없었던 지라 주의 사항을 잘 몰랐다) 스무 살이었던 내 눈엔 별 게 없어 보였던 것 같다.
할아버지와 일찍 저녁을 먹고 오후 6시 경 연탄을 갈았다.
오후 시간 내도록 한번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내내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안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이상하게 방 천장이 뿌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 담배 연기인가? 하고 별 생각 없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나서 할아버지 방문을 열어보니 주무시고 계셨다.
불안한 마음에 대문을 열고 나가보니 밖에 불빛이 환했다.
멀리 희미하게 가로등 불 빛 하나 켜진 것 말곤 온통 암흑이어야 하는데 여긴. 어린 시절 밤이 무서워서 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도 꼭 할아버지와 같이 가곤 했던 곳인데.
보일러실로 걸어가는 길, 외부에서 보니 아직 불이 큰 것 같다고 느끼진 않았다.
어쩌면 아직 큰 문제가 아닐거야라고 생각하고 보일러 실 문을 열었다.
나무로 지어진 보일러실. 먼저 보이는 건 온수 사용을 위한 기름 보일러실. 불꽃들이 보였다.
어쩌면 내가 끌 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할 만큼의 불. 다급한 마음에 나는 서둘러 물을 퍼다가 기름 보일러 실에 있는 불을 어느정도 껐는데, 기름 보일러실 안에 또다른 문을 열어야 연탄 보일러실이 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말 그대로 타닥 타닥 나무타는 소리를 내며 창고가 활활 불 타고 있었다.
이 때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친듯이 집으로 뛰어 들어가 악을 쓰며 할아버지를 불렀다 어서 나오시라고.
입으로는 악을 쓰면서 양은바케스에 미친듯이 물을 퍼 담았다 한두번 정도 연탄 보일러에 물을 뿌렸을까. 갑자기 누전이 되며 정전이 됐다. 그제서야 퍼뜩 119에 전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캄캄한 방안에서 전화기를 뒤져 119에 신고를 했다.
제발 빨리 와주시라고. 시골이라 모두가 다 아는 동네.. 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누구씨 집으로 빨리 와주시라고.
할아버지를 밖으로 모시고 쉴 틈 없이 물을 퍼다 뿌리고 또 뿌리고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을 때 119가 도착했다. 아저씨는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물을 퍼나르는 나에게 소방차 바퀴가 도랑에 빠지는 지 봐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소방차에 물이 없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다른 소방차가 출동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소방대원, 방범대원 분들이 처마 속으로 불이 타고 들어가면 손을 쓸 수 없다면서 창고인지 집인지 거의 부셔 버렸던 것 같다 한시가 급해서.
불길이 잡히고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정도.
인근 도시에 사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오빠는 야간 대리운전 아르바이트를 할 때라 다행히 금방 통화가 됐다. 오빠에게 집에 불이 났다고,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차로 1시간 거리를 오빠는 거의 30분 만에 온 것 같다. 우리는 우애가 꽤 좋은 남매인데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오빠는 항상 나보다 훨씬 더 어른 같은 그런 사람이다. 도착하자마자 나에게 한 말은 웃으면서 "불을 낼 거면 다 내야 집을 새로 짓지~ 왜 내다 말았냐~?ㅋㅋ " 였다
나중에 들었지만 당시에 같이 있던 오빠 여자친구가 함께 왔는데,
전화 끊고 거의 날아오듯이 운전을 하는 통에 도착하기 전에 죽는 게 아닌가 했었다고..
상황이 정리되고 나는 소방, 방범대 아저씨들 (얼굴을 아는 동네 아저씨들)의 주의를 모아
밤이 늦었으니 절대 부모님께는 지금 전화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드렸었는데
불을 늦지 않게 꺼 주신 것도 감사했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신 것도 참 감사했다.
한파가 몰아치던 겨울이라, 바닥에 깔린 보일러관이 얼어 터질까봐 온 집에 이불을 다 꺼내서 펴두었는데 판단력이 많이 떨어진 할아버지는 자꾸만 자꾸만 이불을 다시 개켜 올리셨다.
다음 날 새벽, (부모님이 다시 돌아오시는 날) 사실 나는 이날 아르바이트를 갔어야 했는데
미리 엄마에게 7시 50분 첫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갈 수 있게 새벽에 깨워 달라고 했었다.
엄마가 "일어났어~?" 하는데, "응 엄마" 하고 대답과 동시에 눈물부터 쏟아졌다
"엄마 미안해, 내가 집에 불을 냈어..."
나만 무사하면 집이야 타 없어지든 말든 상관없다는 엄마..
연탄 가스를 나도 모르게 많이 마셨을까 싶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환자 복을 입고 검사실 앞에 앉아있을 때 멀리서 아빠가 나에게 걸어 오는 게 보였다
아빠가 걸어오다가 갑자기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나는 아빠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엄마가 와 있었다
내 손가락 끝이 바케스로 물을 퍼 나르느라 안쪽 날카로운 부분 때문에 전부 다 베어진 상태였는데 엄마는 내 손을 보고는 많이 울었다.
외할머니는 이 오래된 집터의 기운이 너무 센데, 기가 센 부모님 (두 분 모두 가진 기가 세다고 함) 이 집을 비우니 귀신이 해코지를 하는 거라고 했는데, 난 무속 신앙을 믿는 편은 아니어서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그 때부터 10년 간 화재는 날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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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서 이따 마저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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