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호흡연구소관리자
썰

53. 아빠가 친구들 만나게 된 이유

ㅇㅇㅇㅇ· 2026.08.10 15:25· 조회 287
매주 월요일 브런치랑 네이버 챌린지에 연재 중이에요 더 보고 싶으면 여기서 봐요 토요일 퇴근 후 샤워하다가 전화 울렸어. 화면엔 오랜만의 번호. "힘들어 죽겠어. 이 꼴로 누굴 만나냐고" "그딴 소리 하지 마. 아무도 니 사정 몰라. 그냥 친구 얼굴 보고 싶으니까 와." 기용이 삼촌. 옛날 독수리 오 형제라던 그놈이. 결혼하고 한 번도 못 봤던 친구들이었지. "말이 많은 게 아니라.." "뭐야? 도리가 이래? 요즘 말도 많고? 넌 그런 애 아닌데. 넌 진짜 누구야? 도리가 뭐 되어 있냐고?" "아.. 그게.." "됐어. 토요일 저녁 6시 나와. 주소 알고 있으니까 못 나오면 집에서 대패를 내고 싶으면 나와라." 친구는 멋대로 끊어버렸어. 반가움과 함께 웃다가 금방 한숨이 나왔어. "도리? 누 전화예요?"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을 흔들며 물었어. "아.. 그냥.. 음.." "뭐야? 왜 말을 더듬어? 이상한데?" "친구!" "친구? 누가?" "기용이라고 있잖아 독수리 오.." "오! 결혼식 때 웨딩카 만들어준 그 분?" "응!" "헤헤 기억나네. 정말 예쁘게 만들어줘서.." 아내가 옛날 결혼식을 떠올렸는지 입을 굳게 다무는 게 보였어. "다녀와 주고 고생했대" "와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못 올 줄 알았는데. 고마워서 뭐해?" "유부남이 뭐야 이 친구? 이젠 품절! 고마워, 나중에 봐~" 결혼식날은 정신이 없었어. 처음 해보는 거고 예행도 없었으니. "신랑! 신부 부모님께 큰절을!" 주례 말에 아버지가 인사하려고 하는데 웃음이 터져 나왔어. "야.. 야!" 사회자가 작게 불렀어. "왜?" 아버지가 신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데 단순히 허리만 굽혔었어. 90도로 정중하게 말이야. "신랑! 사랑하는 맘으로 큰소리 만세!" 아버지가 진짜 있는 힘껏 외쳤어 "만세! 만세! 만세!" "더 큰소리로! 신부를 지켜줄 각오를 보여줘!" "..." 이미 충분히 외쳤는데 또 작다니까 황당해하던 아버지와 웃음 참는 엄마. "마안세! 마안세엥! 만만세!" 음정까지 튀면서 외쳤어. 이제 사회자가 만족해하며 웃었어. "신부님이 답변하시겠습니다!" "어? 내가?" 아내가 당황해하며 바라봤어. "허락하시나요?" "뭐? 신부한테 만세를 시키는 결혼식?"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싫었던 아내는 머뭇거렸어. "신부가 남편이 마음에 안 드나 보네요! 안 하면 이 결혼은 무효! 동의하시죠?" "네!" 얼굴이 화끈거린 아내가 작은 목소리로 시작했어 "만... 세... 만... 세... 만... 세에...." 퇴장할 때 아내가 귀에 닿을 정도로 말했어 "꼭 그 친구 불러. 다른 애들 말고 그 친구 꼭 초대해." 정말 이를 갈던 표정이었지. "얘들 사진 어디 갔어?" "밥 먹으러 갔대" "밥? 사진도 안 찍고? 그 자식 진짜 결혼식 온 거네? 밥 먹으러 온 거 아냐?" "웨딩카 만드느라 피곤했대. 서있을 기운도 없다고" "아.. 웨딩카.. 그럴 수 있지" 자기가 웨딩카를 갖다 붙였으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었어. "와.. 도리야.. 이게 뭐야?" 신혼여행 출발 전 웨딩카 앞에서 아내와 아버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어. "..." 옆에서 배 잡고 웃던 친구 하나. "..." 운전석과 조수석에 날개. 본넷 위에 동글동글한 뭔가를 붙여놨어. "이건 또 뭐야?" 하얀 차에 검은 글씨로 삐뚤빼뚤하게 여러 번 덧칠한 글자들. 옷으로 문질러도 안 지워지는 거야. "A..re You.. M...a... rine? 이 자식들.." 결국 신혼여행은 게임 스킨으로 변신한 차를 타고 출발했어. "근데 기용이가?" "오랜만에 보자네. 토요일에. 그냥 가지 마도 돼" 핸드폰을 놨어. "왜애? 친구 만나는데? 아빠 되기 전에 도리로 돌아가!" 아내가 양팔을 펼치며 외쳤어. 아버지는 살짝 웃음이 나왔어. "그냥 돈이 든다고. 그 돈이면 도윤이 옷 사주지" "그것도 좋지만 당신 정신건강이 먼저야! 망가지면 못 고쳐!" 아내의 말에 아버지는 흔들렸어. 자기 상황에 친구라니, 돈이 어딨냐고 생각했던 때였지만 아버지 마음 한 구석은 다르고 싶었나 봐. "진짜 가도 돼?" "응! 가 도윤이는 내가 봐줄게~" "그런가?" "오~ 애초에 안 갈 생각이었네! 그리고 가는 김에.." "응? 뭐? 뭘 사올까?" 아내가 갑자기 진지하게 낮은 목소리를 냈어. "기용이 목을 따 와. 내 앞으로." 친구 만날 생각에 설렌 아버지. 그 모습만으로도 즐거웠던지 아내가 웃었어. 그리고 아버지 아내가 웃고 장난칠 때 자기도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지 도윤이가 더 크게 웃었어. 그 밤 작은 신혼집은 웃음소리가 자정까지 끊기지 않았어. 약속날. 아버지는 거울 앞에서 오래 서 있었어. "오.. 아버지도 거울을 보네" 아내가 깜짝 놀라며 말했어. 이 옷 저 옷 입어보고 머리도 여러 번 정리하며 골똘했거든. "마누라.. 이 바지에 저 옷 나을까? 아니면?" "..." 아내는 한동안 아버지를 지켜보다가 옷장을 뒤져서 옷 두 벌을 내밀었어. "양복이랑 츠리닝 중에 뭘 입고 갈래?" 너무 극단적이라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어. "왜 이래? 시간도 없잖아" "그래서 묻는 거지? 뭘 입을 거야?" 계속 장난치는 아내에게 아버지는 조금 짜증난 톤으로 말했어. "누가 친구 만나러 양복을 입냐고? 츠리닝은 또 뭐야? 놔둬, 시간도 없다니까" 아버지가 짜증내자 아내가 입을 삐쭉 내밀다가 곧 웃으며 말했어. "그래~ 친구 만나는 거지 당신 선보이는 거 아니잖아? 며칠 못 씻어도 걸려있는 거 대충 입고 모자 쓰고도 만날 수 있는 게 친구 아니야~" 그 순간 아버지는 깨달았어. '아.. 나 친구 만나는 법도 잊었구나' 어렸을 땐 그랬었어. 잘난 모습을 보여줄 필요? 멋있어야 할 이유? 그런 건 없었어. 그냥 도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친구들이 옆에 있었거든. 자기가 뭘 원하지도 않고 그들이 어떤 상황이든 상관없었던 그 시절. 그런 아버지와 같았기에 친구로 지낼 수 있었어. 그 모든 걸 잊고 살고 있었던 거지. "다녀올게" "응! 술 조절 좀 하고~ 기용이 목은 꼭 따와!" 아내를 뒤로하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아버지. 발걸음이 이상했어. 무겁고 가볍고. 호프 앞. 마른 오징어 냄새와 담배 냄새가 밖까지 새어 나오던 그곳. 성인 되던 그해 새해 첫 시간에 들이닥쳤던 그곳. 단골이 돼버린 지 오래였어.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때의 설렘이 여전했어. 문 앞에서 한참 숨을 고르던 아버지. 깊게 숨 쉬고 문을 여는데 "손잡이에 벌레 있냐? 왜 서만 있냐? 어서 들어와 병신 같이.." 그 한마디가 아버지를 과거에서 현실로 불러낸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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