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호흡연구소관리자
썰

미디어의 검은 손아귀

Nno· 2026.08.09 13:04· 조회 127
2006년 관찰력으로 당시 세상을 까낸 책이 정확히 20여 년 전 1985년에 나왔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당신은 아마도 이메일 주고받거나 통화하거나 음악 내려받거나 게임 빠져있거나 사이트 돌아다니거나 톡 보내거나 메신저로 얘기하거나 영상 녹화하고 재생 중일 텐데, 그게 아니니까 지금 이 책을 보고 있는 거다. 20세기판 문헌이면서 21세기를 먼저 제시한 희귀한 저작을 마주하는 중이다. 살짝 훑어보기만 해도 1985년 당시 글로벌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경고에 깊이 충격받을 게 뻔하다. 텔레비전의 악독함을 일찍이 지적한 이 박박한 책이 인터넷 시대 지금이야 비로소 맞춰떨어진다는 게 진짜 기이하지 않나? 지금 이 책을 손에 들었으니 묻고 싶다. 우리 사회가 정확히 어디로 흘러가는지 진짜 신경 쓰지 않나? 혹시 당신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람이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너무 순진한 개소리를 진짜 믿는 건 아니겠지? 젊은이들이 나누는 문자를 그저 '세대 문화'로 치부하는 천박함에 빠져있지는 않나? 드라마 같은 자극적 방송과 싸구려 개그를 텔레비전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나? 그렇다면 당신은 정확히 틀렸다. 게다가 뉴스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을 여론이라고 우기면 구제 불능 수준이다. 이 말은 당신이 21세기 초반의 미디어 환경에 완전히 포획당해 판단력을 통째로 잃었다는 뜻이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다. 주변을 한번 찬찬히 둘러봐라. 겨우 십 년 사이에 갖가지 미디어가 온 세상을 집어삼켰다. 고개 돌리면, 손 들면, 엄지 까닥이면 죄다 즐길거리가 펼쳐진다. 놀 거리가 넘쳐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이 책 제목처럼 '죽도록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세상이다. 그런데 열심히 즐길 때마다 우리 내부에서 뭔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게 정확히 뭔지 궁금하지 않나? 텔레비전 속 오락은 모든 담론을 짓누르는 지배 원리다. 뭘 보여주든, 어떤 각도에서 전달하든, 가장 먼저 충족되어야 할 조건은 재미있고 즐거워야 한다는 거다. 바로 이 '재미'라는 독약 때문에 우린 매일 뉴스에서 재난과 학살 장면을 봐도, 진행자가 "내일 또 만나요"라고 하는 순간 그대로 넘어간다. TV가 몇 분의 끔찍한 장면을 보여주면 한 달은 못 잘 거라고 당신은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뉴스'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보다 그저 오락거리로 소비한다는 걸 잘 알기에 주어진 초대에 응한다. 뉴스쇼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들 - 잘생기고 친절한 진행자, 재미있는 농담, 그자극적인 오프닝 곡, 현장감 있는 영상, 솔깃한 광고 - 이 모든 게 방금 본 장면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고 은근슬쩍 신호한다. 솔직히 말해서 뉴스 프로그램은 교육하거나 성찰하게 하거나 정서를 높이려는 형식이 아니라 그냥 보기 좋은 오락일 뿐이다. 다만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너무 탓하진 마라. 애초에 글자 기반 소식을 편집하거나 라디오 뉴스를 제작하는 게 아니라, 화면에 띄워줄 시각적 뉴스를 만들고 있을 따름이니까. 결국 우린 '질 낮은 정보의 추구'라 할 실체로 빨려들어가는 중이다. 이 게임에서 '실제 사건'은 재미 삼아 쓸 원료일 뿐이고, 뉴스 출처도 결국 오락의 하찮은 구성 요소가 된다. 오류와 판단 실수가 난무해도 문명은 버틸 수 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그런데 세상 전체를 22분짜리 쇼로 축소하고, 재미있는 뉴스가 중요한 뉴스로 둔갑하는 상황 속에선 과연 문명이 살아남을까? 우리는 모두 "다음 소식입니다"라는 진행자의 말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다. 각 사건이 따로따로 취급되고, 연결성은커녕 다른 상황과의 관련성까지 죄다 빼버린, 산산조각난 세계에 익숙해진 거다. 덕분에 전체 맥락을 중심으로 세상을 읽는 능력을 완전히 까먹어버렸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새로운 모순이 생겼다. 배경이 없는 상황에선 모순 자체가 증발한다. 텔레비전은 거의 매 30분마다, 앞뒤의 내용과 상관없이 갈등의 성격도 감정도 전부 다른 끊어진 사건을 내보낸다. 한쪽으로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팔고, 또 한쪽으로는 이미지 우월주의를 밀어붙이고, 또 한쪽으로는 시청자가 화면 앞을 자유롭게 드나드니까, TV는 8분 단위로 각 사건을 완결된 조각으로 만들어낸다. 따라서 한 꼭지에서 다음 꼭지로 옮아갈 때, 시청자는 생각이나 감정을 어디든 갖고 다닐 필요가 없다. 이제 텔레비전은 정보를 전달하는 걸 넘어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까지 지시하는 초월적 매체 지위에 올랐다. 동시에 TV는 미국 문화와 너무 깊숙이 결합되어 이제는 그 뒤에서 울려오는 희미한 목소리도 감지할 수 없고 깜박거리는 회색 불빛도 인식하지 못한다. 텔레비전이 구축해온 호화로운 세상도 이제는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픽과 전자혁명이 낳은 가장 큰 골칫거리는, TV를 통해 비춰진 세상이 우리에겐 낯설기보다 자연스럽다는 거다. 이상함을 못 느낀다는 건 조교당했다는 신호이고, 그렇게 길들여진 만큼 우린 이미 변했다는 의미다. 우리 문화는 거의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세계관에 완벽하게 순응했다. 다시 말해, TV가 규정하는 진실과 지식과 사실을 우린 너무 철저하게 받아들여서, 진짜 가치 없는 것들이 마치 중요한 양 우리 뇌에 자리 잡고, 모순된 것들이 극도로 합리적인 양 우리 마음에 박혀버린 거다. 텔레비전이 뱉어내는 쓰레기 정보에 대해선 딱히 이의가 없다. 무가치한 정보야말로 텔레비전이 제공할 수 있는 최고의 산물이고, 그걸 놓고 누구도 심각하게 위협받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가 문명을 평가할 때는 문화적으로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척도로 삼지, 하찮고 뻔한 것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이 있다. 텔레비전은 겨우 초라할 뿐인데도 떠들썩하게 과대포장되어서, 스스로를 거대한 문화적 소통 채널인 척 나설 때가 가장 위험하거든. 이 책은 우리 전체가 겪고 있는 문자 문명에서 전자 문명으로의 거대한 전환에 대한 얘기다. 글쓰기나 시계 같은 기술을 문명에 받아들이면 시간을 지배하는 인간의 능력을 늘릴 뿐만 아니라, 생각의 방식부터 문명의 본질까지 송두리째 바꾼다는 거다. 아침의 뉴스나 라디오, 신문으로 접한 정보 때문에 하루 계획을 뒤바꾸거나 안 했을 행동을 했거나 해결할 문제에 답을 얻은 경험이 자주 있나? 일상의 뉴스는 대부분 잡담 거리에 지나지 않는 무가치한 정보 집합일 뿐 실제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정확히 이게 통신 혁명의 가장 큰 유산이다. 통신 기술이 살과 무관한 정보를 사방팔방으로 흘려보내면서 '정보 대비 행동 비율'이 극도로 낮아진 거다. 여기서 핵심은 텔레비전 자체가 오락이라는 게 아니라, TV 때문에 모든 표현이 자동으로 오락 형식을 띠게 됐다는 거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으로 온 세상과 교류하지만, 그건 개성이 죽은 무표정한 방식일 뿐이다. 진짜 문제는 텔레비전이 오락물을 쏟아낸다는 게 아니라 모든 콘텐츠가 오락 양식으로 전달된다는 거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거울아 거울아, 누가 제일 나은 인물이야?"라고 물었던 백설공주 이야기의 왕비처럼 탐욕스럽게 묻는다. TV 화면에 비친 성격이나 가정생활 이미지나 외모가 왕비가 받은 대답보다 더 나은 사람에게 사람들은 투표 경향을 보인다. 인간은 항상 자기 상상대로 신을 그린다. 다시 말해 신처럼 되고 싶은 정치인은 시청자의 상상 속 이미지로 자기 자신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학습에서 중요한 건 어떤 식으로 배우는가 하는 문제와 늘 연결된다. 사람들은 행동하는 대로 익힌다. 텔레비전은 아이들이 TV 시청 시 나타나는 행동 양식대로 행동하게끔 가르친다.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2차적 배움이 문법이나 지리, 역사 학습보다 훨씬 더 본질적이다. 이 취향들이야말로 미래를 근본적으로 결정하니까. 대중이 하찮은 일에 정신팔릴 때, 끊임없는 오락을 문명적 삶이라 착각할 때, 진정한 공개 대화가 헛소리로 떨어질 때, 국민이 관객이 되고 모든 공식 활동이 가벼운 희극처럼 변할 때 국가는 위기에 빠진다. 이때 문화의 몰락은 필연적이다.
댓글 1
abc(231.128)08-09
병원 좀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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