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미혼 친구 만나고 집에 와서 기분이 계속 쳐짐
아이들 재운 후 이제 앉았다
다음 달에 그 친구 생일이라 또 만날 건데 벌써 마음이 무거워진다 선물도 벌써 샀다 친구가 좋아하는 브랜드 크림인데 건네면서 또 너 그런 돈이 있어? 같은 소리 들을까 포장을 몇 번이나 다시 했다
오늘 대학 동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마흔인데 결혼을 안 했고 서울의 외국계 회사에서 다니고 있다 내 쪽은 구미에서 경리를 하면서 애 둘을 키우고 시부모님이랑 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대화가 자꾸 어색했다 둘째를 낳고부터 특히 더 그랬다
너는 진짜 대단하다 나는 절대 저렇게는 못 산다
이 말이 전혀 칭찬처럼 안 들렸다
넌 옛날 꿈이 디자이너였잖아 아까운데
이 말을 듣자마자 커피잔을 들었다가 한참 있었다
넌 적어도 직장이 안정적이잖아 나는 매년 연봉 협상으로 피 말려
좋은 뜻인 줄 알았다
휴가로 포르투갈 다녀왔는데 넌 아이들 크면 꼭 가봐 그때 체력이 남을까
여기서부터 이상했다
친구가 요즘 주말 얘기를 했다 토요일엔 늦잠 자고 필라테스 다니고 일요일엔 혼자 전시 본대 나는 토요일마다 시아버지 병원 모시고 일요일엔 한 주 반찬을 준비한다 얘기하려다가 그만뒀다 또 대단하다는 소리 들을 게 뻔했으니까
계산할 때도 친구가 넌 아껴야지 내가 낼게 하면서 카드를 먼저 꺼냈다 고맙다고 했지만 돌아오는 내내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나는 그 정도로 쪼들리지 않는다 둘이 벌고 있고 적금도 꼬박꼬박 넣는 중이다 그냥 내 돈 쓸 곳이 다를 뿐이다
버스를 타며 생각했다 친구가 나를 깎아내리려던 건가 아니면 자기 얘기를 한 건가 분간이 안 선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일 거다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저 말 하나하나가 다 걸린다
집에 와서 거실 바닥에 널린 장난감을 정리하다가 아깝다는 말이 또 떠올랐다 혼자 울었다 내 인생이 낭비되는 건가 싶어서
남편한테 말했더니 그 친구가 자기를 부러워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 친구의 눈빛이 그렇지 않았다 아이 사진을 보여줘도 귀엽네 하고 자신의 회사 얘기로 넘어갔다
다음번엔 내 얘기는 안 하고 친구 얘기만 들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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