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호흡연구소관리자
공포

그 옷장이 남긴 것들

ㅗㅗㅜㅑ· 2026.09.23 00:08· 조회 261
안녕하세요! 마지막 글을 들고 왔어요.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이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얘기했듯이, 부모님이 주무시는 방 한쪽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던 수납장이 있었어요. 지금은 없지만 어머니가 결혼할 때 비싸게 사서 가져온 거였는데, 그냥 큼지막한 수납장이라고 부를게요. 요즘은 이런 걸 잘 안 부르긴 하더라고요. 붙박이형 시스템이 많아져서 그런 건가요.. 그 가구도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데.. 나중에 반지하에서 나왔을 때 운반 과정에서 뭔가 부러진 부분이 있어서, 새로 이사간 아파트에서는 버려야 했어요. 우리 가족과 정말 오래 한 지붕 아래 있던 그 물건.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머니의 혼수품으로 왔던 그 수납장은 신혼집부터 함께였어요. 튼튼한 우드로 만들어졌다고 하셨는데, 그 덕에 고모 창고에 오래 보관되고 있는 동안에도 손상되거나 곰팡이 피지 않았어요. 결국 우리 가족만 사는 반지하로 이사를 올 때, 공간이 부족했지만 그 물건만은 꼭 가져와야 한다고 엄마가 결정하셨어요. 나중에 더 큰 집으로 옮길 때도 창고의 다른 물건들은 못 가져갔지만, 그 수납장과 화장대만은 가져갔어요. 화장대는 엄마가 출퇴근할 때 필요하다고 해서 작은 방에, 그 큼직한 가구는 안방 한쪽을 완전히 차지하게 했어요. 벽면을 다 채울 정도로 컸던 그것. 우리 집은 맞벌이 가정이라서 이사한 날 움직이는 전문가들이 포장까지 다 해줬어요. 그래서 우리가 들어갔을 때는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는 상태였는데, 밤 늦게까지 정리하느라 바빴던 기억이 있어요. 그 집에서 첫밤. 처음엔 문 쪽에 배치했는데 막내가 자꾸 투정을 부려서, 엄마가 막내를 옆에 재우는 형태로 배치를 바꿨어요. 다음날 아침. 형이 일어났는데 깊게 자지 못했나 봐요. 계속 졸린 상태였고 학교 가기 전까지 정신을 못 차렸어요. 그 이후로도 며칠 동안 형은 계속 아침에 피곤해했어요. 처음엔 이사 때문일 거라 생각했지만, 계속되니까 뭔가 이상했대요. 그런데 정작 부모님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어요. 형이 자자꾸 졸린다고 물어본 거죠. 왜 매일 아침이 이렇게 힘들냐고. 그러니까 형이 말하는 게, 옆 수납장에서 계속 뭔가 긁히는 소리가 나서 신경 쓰여서 못 잔다는 거였어요. 처음엔 벌레 소리인 줄 알고 잡으려고도 하고, 자기 머리카락이 긁히는 건가 싶어서 베개 위치도 바꿔봤대요. 그런데도 계속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고.. 그리고 그 가구 밑에서 자꾸 찬 공기가 나오니까 더 못 잔다고 했어요. 그래서 형이 내 자리를 바꿔달라고 했고, 난 그때 막내 때문에 더워서 좋다고 흔쾌히 넘겨줬어요. 결국 배치는 아빠, 엄마, 막내, 형, 나 이렇게 됐어요. 내 바로 옆이 그 수납장인데, 정말 밑에서 찬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더울 때면 거기 붙어서 잤어요. 그런데 형이 들었던 그 갈짝거리는 소리는 나는 단 한 번도 못 들었어요. 대신 나는 그 수납장 안에 들어가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그 공간이 편했던 것 같아요. 왼쪽에 이불 보관칸이 있었는데, 위아래로 나뉜 아래쪽에 푹신한 이불이 들어있어서 침대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종종 거기에 누워서 낮잠을 자곤 했어요. 거기서 문을 닫으면 숨 막히지도, 덥지도 않고 되게 편했어요. 이상하지 않나요? 근데 내가 거기서 자는 모습을 본 막내도 몇 번 따라했어요. 부모님이 깜짝 놀라셨죠. 막내가 어디에 있는지 못 찾으셨거든요. 한참을 찾다가 아빠가 제게 안방의 그 가구는 봤냐고 물었을 때 알게 되셨어요. 그렇게 형과 막내에게는 좀 특별한 물건이 되었어요. 특히 그 이불 영역은 우리의 작은 피난처 같았어요. 거기서 막내가 군것질을 하다가 이불에 흘려서 혼난 적도 있었죠. 이사하는 날. 부모님은 새집에 먼저 가서 정리를 하고 계셨어요. 물건들이 들어오면서 청소와 정렬을 동시에 하셨어요. 그러다가 옛집을 완전히 비웠는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이사 업체 분들한테 빠진 게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하셨고, 형과 나는 손잡고 그 반지하를 마지막으로 방문했어요. 우리가 떠나간 후 새 세입자가 바로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비어있는 그 집을 봤어요. 가구가 없는 집은 울리는 소리가 났고, 쌀쌀해 보였고, 좁은 게 더 커 보였어요. 작은 방, 주방, 다용도실 등 이것저것 확인하면서 뭐가 남아있는지 봤어요. 그리고 안방, 그 물건이 있던 벽면을 봤을 때 우리는 순식간에 얼어붙었어요. 벽면에 빽빽이 붙어 있던 부적들. 그동안 가구에 가려졌던, 누렇게 변색되고 때가 타버린 부적들이 벽을 차지하고 있었어요. 형과 나는 그걸 보니 겁이 나서, 그 방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바로 나왔어요. 새로 이사간 곳에서 엄마가 물어봤을 때, 우리는 그냥 없다고만 답했어요. 그 벽에 대해선 무서워서 말을 못 했거든요. 새 집에 가져간 그 수납장. 그런데 점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이사 과정에서 손상됐다고 생각했어요. 문이 계속 뽀드득거렸거든요. 엄마가 수리도 해주셨는데, 나중에는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더라고요. 시집올 때 가져온 거라 계속 수리했는데, 안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부턴 더 이상 쓸 수가 없었어요. 곰팡이 제거제로 닦아도, 습기제를 넣어도 소용없었어요. 계속 수리하고, 청소하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이사할 때 폐기물로 신고하고 버려야 했어요. 엄마는 그걸 버릴 때 많이 아파하셨어요. 시집올 때 큰맘 먹고 비싼 값을 주고 맞춘 거였다고. 외할머니가 잘 살라는 뜻에서 공장까지 가셔서 웃돈까지 주고 제작하신 거였다고 하면서, 나중에 할머니한테 버렸다고 말씀드릴 때 정말 아프시다는 걸 느꼈어요. 할머니는 반지하에서 아파트까지 올라간 걸 축복하신다고 말씀하셨지만, 엄마의 마음은 계속 무거웠나 봐요. 외할머니는 해마다 정초가 되면 부적을 나눠주시는 분이신데, 어디서 구하시는지는 몰라요. 받으면 받는 거고, 작년 것은 태우는 게 우리네 방식이에요. 할머니네 갈 때면 물을 떠서 부엌에 두시는 것도 봤고요. 생각해보니 할머니가 그 수납장 안에 부적 같은 걸 넣으셨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나중에 그 물건이 부서졌을 때, 위쪽 원통 기둥 안에서 노란색 뭉치가 나왔는데, 곰팡이로 인해 펴지지도 않아서 정확히 뭔진 몰라요. 하지만 그 수납장이 형과 막내한테 줬던 따뜻한 기억만큼은 분명해요. 지금은 그걸 만드던 곳이 없어져서 똑같이 만들 수 없지만, 할머니는 예전에 그곳에서 사신 자개 농을 여전히 가지고 계세요. 할머니네 벽에 있는 그 농은 정말 예뻤는데, 만드신 분이 안 계셔서 떨어진 부분을 수리하기 힘들다는 게 정말 안타까워요. 참고로 엄마는 훨씬 나중에야 부적에 대해 알게 되셨어요. 형과 내가 그때를 얘기하면서 처음 들었대요. 그때 엄청 놀라시면서 호들갑을 떨으셨고, 왜 그걸 이제야 말했냐고 하셨어요 ㅋㅋㅋ 지금은 재개발로 그 지역이 아파트 단지로 변했어요. 지도에 보니까 공원이 들어선 것 같은데 정확하진 않아요. 내가 측량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ㅋㅋㅋ 이사 가기 전에 한 번 그 근처를 지난 적이 있는데, 어떤 여성분이 개를 키우면서 사신다고 들었는데, 알고 보니 무당집이었어요. 어릴 땐 그 깃발이 뭔지 몰랐는데, 나중에야 무당 집 표식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ㅎ...... 음.. 여기까지가 모든 이야기입니다. 재밌으셨나요? 이제는 먼 옛날의 추억이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으니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네요. 이글을 읽는 분 중에 지금이 힘들다면, 나중엔 이것도 그저 별 거 아닌 것처럼 회상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다가오는 추석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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